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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기] 레몬, 가지이 모토지로, Candied Lemon Peel

Under 근로 삼매/불법 잡기(번역하고 찍고 만듦)   Posted @2010/01/30 22:41

아버지가 가지이 모토지로의 팬인 데다
실은 여자애를 원했단다

취업하지 않고 프리라이터가 된 건 면접에서 이름을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과
펜네임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람도 아닌데 소개팅 자리에선 웃음 거리가 되고
여장이 취미인 변태 녀석에게는 '귀여워' 따위의 소리를 들어서
대체 뭐가 즐겁겠냐.

이름!
이름!
이름!!

"미안하지만 검문이라 면허증 좀 보여 주세요."

젠장!!

"에..이름이..이도..레몬..씨? 풉"
"그런데 뭐가 잘못됐습니까!?"

제기랄!!!!

─〈Candied Lemon Peel〉, 야마시타 토모코


레몬(檸檬)

가지이 모토지로(梶井基次郎) 지음
유우(saeyue@hanmail.net) 옮김


정체 모를 불길한 응어리가 마음을 종일 짓누른다. 초조라고 해야 할지, 혐오라고 해야 할지─술을 마시고 나면 숙취가 남듯이 매일같이 술을 마시면 오래도록 숙취에 시달리게 되어 있다. 그것이 왔다. 이게 아주 몹쓸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얻은 결핵이나 신경 쇠약이 문제가 아니다. 등골이 빠질 듯한 빚 따위가 문제인 것도 아니다. 몹쓸 것은 불길한 응어리다. 예전에 나를 기쁘게 했던 아름다운 음악, 훌륭한 시구, 그 어떤 것도 견딜 수 없었다.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기 위해 일부러 발걸음을 했음에도 두세 소절 만에 불쑥 일어나고 싶어진다. 무엇인가가 나를 초조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시종 거리에서 거리를 떠돌았다.
어째서인지 그 시절 나는 볼품없고 아름다운 것에 크게 마음이 끌렸다. 풍경 중에서도 허물어져 가는 마을이라든지, 그 마을에서도 찬바람 부는 큰길보다 친근함이 느껴지는, 더러운 빨래가 널려 있거나 잡동사니가 굴러다닌다거나 지저분한 집 안이 들여다보이거나 하는 뒷골목이 좋았다. 비바람이 좀먹어 이윽고 땅으로 환원될 듯한 느낌의 거리, 토담이 허물어졌거나 집들이 기울어졌거나─식물만이 기세 좋게 쭉 뻗어, 이따금 깜짝 놀랄 만큼 훌륭한 해바라기니 홍초가 피어 있는 그곳이 좋았다. ……

<이하 아래 파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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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2 파일을 jpg에서 pdf로 수정했습니다. 폰트는 산돌명조L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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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서점에서 이런 짓하면 혼납니다.
진짭니다.
제가 혼낼 겁니다.

'내'가 저런 못된 장난을 한 서점 마루젠 교토 가와라마치점은 아쉽게도 2005년에 폐점했다고 합니다.
그 전에 가 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가지이 모토지로는, 20세기 초반의 작가로 워낙 일찍 죽는 바람에 남긴 작품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문학사적으로 높이 평가 받고 있습니다만...솔직히 그런 졸리운 부분은 제 알 바가 아닙니다.
저는 이 사람의 글이 무척 발랄해서 좋아요.
대부분이 소설이라기보다 거의 일기 같은 느낌인데, 묘하게 말투에 소년 같은 장난끼가 느껴져서 재밌습니다.
실제 인물이 그렇게 발랄했는지는 모르겠지만.(폐병으로 요절한 사람이 발랄했을 것 같지는 않군요;)
..혹시 이 사람 문장이 발랄하다고 느끼는 거 혹시 저 뿐인가요=.= 아니죠? 아니죠? 아닐 겁니다.. 아니려나.


더불어 이 작품, 〈레몬〉은 소화 출판사에서 이강민 님 번역으로 정식 한국어판이 나와 있습니다.
번역도 훌륭하고 해설도 붙어 있고 가지이 모토지로의 다른 소설도 실려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서점으로 고고씽.
'가지'라고 읽을지, '가지이'라고 읽을지 고민했습니다만, 위의 책도 있고 아직 가지이라고 읽는 분이 많은 듯하여 최종적으로 가지이로 옮겼습니다.

중간에 나오는 폭죽 이름중에 '中山寺の星下り' 말인데요.
위의 책에는 '주산지의 호시구다리'로 되어 있습니다. 영어판도 그렇게 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정확한 요미가 있으면 좋을 텐데, 일단 수정하지 않고 그냥 '나카야마데라의 별똥별'로.. 이런 식으로 오역이 탄생하는 겁니다, 여러분. 후훗.


집에 마침 언니가 레몬차가 마시고 싶다며 만들어 놓고 마음에 안 들었는지 버려둔 레몬 절임이 한 통 있어,
레몬을 아득아득 씹어먹으며 번역했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레몬도 막 먹었는데, 이제 그런 짓은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레몬은 좋아합니다.


쉬운 말로 풀어 쓸 수 있으면 어려운 한자는 쓰지 않는 게 옳은 번역입니다만,
작품의 분위기상 한자를 살리는 방향으로 했습니다.
워낙 문장이 분열적이라서 완전히 풀어서 옮기고 싶은 문장도 있었지만 역시 가급적 원문에 손대지 않았습니다.


그나저나. 이것 때문에 아들 이름을 '레몬'으로 지은 겁니까, 아버니임!
남자 이름이(그것도 야쿠자처럼 생긴 건장한 남자 이름이) 레몬인 것도 심란하지만,
폐병으로 다 죽어 가는 사람의 하루를 그린 소설 제목을 자식 이름에 붙이는 것도 심란하네요.
레몬 군 화이팅=ㅅ=

다음 작품은 (아마도) 오카모토 기도의 〈黄八丈の小袖〉.


가지이 모토지로(1901-1932), 첫 작품집 《레몬》 간행 이듬해 폐결핵으로 영면. 향년 3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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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30 22:41 2010/01/30 22:41
Posted by 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