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loi, Eloi, lama sabachthani
(주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주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약 370년 전, 기독교 탄압의 시대. 아마쿠사에 예언의 아이가 태어납니다.
아마쿠사 시로 토키사다,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아름다운 용모,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글을 읽고, 예언을 하고, 바다를 맨발로 건너는 기적을 일으킨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연이은 기근과 다이묘들의 압정에 못 이긴 민중은 결국 봉기를 일으킵니다. 그들의 대부분이 박해받던 기독교도들이었던 탓에, 시마바라에서 시작 된 이 난을 종교전쟁으로 분류합니다.
시마바라, 아마쿠사 - 그러니까 규슈의 나가사키 지역은 서양문물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 항구로 그 지역에는 당연히 기독교 역시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그곳을 다스리던 다이묘(영주) 또한 마찬가지였고요. 그런 것과, 또 뭐어- 여러 가지 정치적인 이렇고 저런 이유 때문에 막부에 의해 다이묘들이 실각하거나 참수당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 봉기에는 농민뿐 아니라, 주군을 잃은 신하(무사)들 역시 가담하게 됩니다. 일본 역사상 최대의 봉기 중 하나라는 이 [시마바라의 난]의 총대장은, 당시 구세주라 불리며, 이미 신격화되어 있던 종교적인 카리스마를 앞세운 16세의 소년 아마쿠사 시로였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등에 업고 이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아주 평화롭게, 우아하게, 천진하게.
계절을 잊고 10월에 만개한 벚나무 위에 잠든 소년(시로)와 그런 소년을 찾아다니는 소녀(유리)와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화가 에모사쿠. 이런, 그야말로 순정만화 다운 상황이 후지타 타카미답다고 할까요. 여하튼 시로도 유리도 귀엽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꽃이 채 지기도 전에, 인접한 시마바라에서 봉기가 일어납니다.
뭐, 장난꾸러기 소년이 반란의 선봉이 되어서 그렇고 저런 이야기들은 상상에 맡기고.
결론적으로 하라성(原城 별칭 하루죠春城)에 입성해서 농성하던 3만 7천 명은 이듬해 3월 1일 진짜 봄을 기다리지 못하고 전멸합니다. 일본에서 이교도였던 그들은 (자신들이 같은 종파라고 생각했던) 서양인의 눈에도 역시 사도(邪道)였습니다. 신의 아이라 불렸지만 아마쿠사 시로는 결코 천국으로 갈 수 없는 죄에 물듭니다. 이 이야기는, 그것이 시마바라의 비극이라고 조용히 규탄합니다.
맞아, 나는 순교할 수 없어. 이대로 천국에 간다면, 천국에 끌려간다면 두 번 다시 시로와 만날 수 없는걸…
그렇게 절벽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유리도, 누구보다 필사적으로 싸우던 아라타의 허무도, 불길 속에서 괴로웠던 생의 마지막을 조용히 기다리던 시로의 마지막 절규도, 유다가 되어 살아남은 에모사쿠의 연민도.
꽃이 피고 지는 것만큼 짧고, 덧없어서 숨이 막힙니다.
후지타 타카미의 만화를 모르던 시절에 나는 그녀가 그리는 세계는 코노하라 나리세의 [HOME]같은 분위기일 거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건 어떤 의미에선 꽤 맞아떨어져요. 그런데 이따금 그보단 [WELL]이었단 생각을 합니다.
후지타 타카미는 제가 보는 만화 중 드물게 '보통 순정만화'를 그리는 사람인데, 그게 전혀 가벼운 느낌이 안 듭니다. 알콩달콩한 이야기도 많은데 말이죠. 결국 그 엉성한 그림의 여백에 압도당합니다.
이 끝없이 찝찝한 뒷맛을 누가 책임질 겁니까.
가장 싫은 건 이 이야기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펑펑 울어버린 나.... 또 자신의 취향을 저주 중입니다. 이로써 후지타 타카미 내 안의 베스트자리 확정.


2권짜릴 합본한 거라 두께도 있고, 지루할 줄 알았는데 꽤 잘 읽혔습니다.
왠지 줄거리의 느낌이 좋아.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