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4월 10일, 마리 씨와 벚꽃구경.(사진 속 여자는 제가 아닙니다)
사진 속 여자(..)에게 허락받지 않았지만 귀찮아서 모자이크 처리도 없이….
많이 부어 보이는 사진이라 본인이 분명 싫어하리라 생각합니다만, 말희 옹이 귀엽게 나왔으니 저는 상관없다능.
1년 전 오늘. 2009년 2월 21일 토요일.
마리는 습관처럼 새벽에 저를 깨우러 왔습니다. 아마도 그 시간(6시경)에 가족들을 깨워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가족들(주로 나)을 깨우고 자신은 다시 자러 가는 마리 씨.
그날은 휴일이라 마리가 집요하게 깨워도 저는 짜증을 냈습니다.
잠깐 일어나서 화장실에 다녀오니 마리는 어느 새 자기 자리에서 자려고 하더군요.
잘 자라고 하고 다시 잠이 들어, 얼마나 흘렀을까.
언니의 비명에 놀라 일어나 보니 마리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부랴부랴 아침 일찍 응급진료가 되는 병원에 데려갔지만, 경련은 멈추지 않고, 입원을 시키게 되었지만
차도가 없어 치료를 포기하고 저녁에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발작은 24시간이 지나도록 계속되었습니다.
의사조차 다시 깨어날 가망은 없다고 확신하는 상황에, 안락사도 생각했었죠.
언니는 이렇게 살려고 발버둥치는 애를 보낼 수는 없다고 강력하게 반대하고, 꿋꿋하게 잠 한숨 자지 않고 간호했습니다. 꽃 구경 좋아하던 애가 꽃 피는 것도 못보고 가는 게 안타깝다는 언니의 소리를 들었을까요?
마리는 의사 선생님도 놀랄 정도로 회복해서 조금씩 조금씩 다시 기력을 회복했습니다.
어려서부터 큰 병을 앓았지만, 결국은 어릴 적의 병 때문에 나중에 시력도 잃었지만,
마리는 참 꿋꿋하고 강한 아이였습니다.
건강한 아이는 아니라도 그래서 오래오래 우리랑 같이 있을 줄 알았는데.
대체 우리는 어디서 마리의 위험 신호를 놓치고 말았을까요?
개나리가 피고, 목련이 피고, 벚꽃 봉오리가 수줍게 벌어지기 시작한
4월의 화창한 봄날, 마리의 심장은 세 번째 발작을 이기지 못하고 멈추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마리가 언니의 말을 들은 거란 생각이 듭니다.
마리가 숨을 거두자 마리의 회복에 특별히 신경 써 주시던 의사 선생님도 한동안 말을 못하고 우셨습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마리를 위해 울어줬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