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고찰/말을 이야기함'에 해당되는 글 7

  1. 2009/10/27 유우 출판사 서평은 올바른 독서 지침서가 아니다 (4)
  2. 2009/09/11 유우 何食ったらそんなモテんの (4)
  3. 2009/06/12 유우 내내 마음이 안 좋다 (2)
  4. 2008/09/04 유우 시대에 남지 않는 글 (2)
  5. 2007/12/02 유우 君が悲しいとは言えない。
  6. 2007/06/26 유우 내일 자유주의자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8)
  7. 2007/05/10 유우 그 밤, 망령을 보았다 (8)

출판사 서평은 올바른 독서 지침서가 아니다

Under 취향 고찰/말을 이야기함   Posted @2009/10/27 12:31

제목을 저렇게 쓴 이상 엄청나게 논리적이고 어려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지는데,
이것도 하나의 잘못된 훈련의 폐해겠지요.
저는 언제나처럼 어려운 이야기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오늘도 편한 마음으로 잡설.

사실 저는 일하기 전까지
책에 있는 해설 다음으로 뒷표지 문구를 경멸하며,
출판사 서평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나마 출판사 서평을 읽기 시작한 게 서점에 다니면서.
책을 전부 읽어 볼 수는 없었기 때문에(제가 경제서를 담당하고 있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고요)
영업자가 가져오는 보도 자료를 열심히 읽게 되었지요.
그리고 출판사에 다니면서 직접 뒷표지 문구를 생각하고, 보도자료를 써야 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는 더 열심히 출판사 서평을 읽고 있어요.
남들은 어떻게 쓰는지 보고 공부할 심산이었지만,
끝내 제가 보도자료를 잘 쓰는 인간은 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드는 생각은 그 전에 제가 오만방자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그리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들이 책을 고르는 데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할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이게 어떤 장르의 책인지는 알 수 있으니까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만.


그런데 여기저기 매체에 올라온 리뷰를 보면 해설과 출판사 서평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새삼 깨닫습니다.
4개(또는 5개)의 보기 중 단 하나만 정답이어야 하는 모의고사를 보고 있는 기분이에요.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오싹해집니다.

우리는 어떤 글을 읽을 때, 글을 읽기도 전에 글에 대한 정보를 받아쓰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국어 선생님이 불러준 작품 개요를 달달 외우고, 정말 그 개요만큼만 작품을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출판사가 이 책을 내는 의도는 출판사 서평에 그대로 들어 있을 것이고,
그 의도에 반한 내용을 해설로 싣는 일도 없겠지만
꼭 정해진 틀로 그 책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겠지요.
(가끔은 너무나 강렬하게 '출판사의 의도'가 들어 있어서 위험한 출판사 서평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는 그리하여 언제나 '오독'을 즐기는 바르지 못한 독서인입니다=_=(당연히 제 언어 영역 점수는 바닥이었고요)
그런 사람이 쓴 출판사 서평이며 편집자 후기(를 빙자한 해설)을 그대로 남이 쓴 리뷰에서 볼 때마다 이 죄를 대체 어떻게 값아야 할지 막막해집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마성의 아이>는 <십이국기>와 별개의 작품이라고 목 놓아 외쳤지만, 사실 <십이국기> 시리즈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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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7 12:31 2009/10/27 12:31
Posted by 유우

何食ったらそんなモテんの

Under 취향 고찰/말을 이야기함   Posted @2009/09/11 23:47

정말 오랜만에 <주점 아키라>를 꺼내 들었습니다.
지금과 전혀 변하지 않은 듯하면서도 무언가 낯선 새파란 신인 야마시타 토모코.
지금은 너무 다작을 해서 점점 클리셰해지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는데,
간만에 초기작을 보니 숨통이 트이는 기분입니다.

드라마CD를 너무 들어서 만화를 보는데 내가 그림으로 보는 건지 귀로 듣는 건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야마시타 토모코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CD가 언제나 높은 질을 유지한 건
원작에 충실한 연출과 절묘한 캐스팅의 힘이 컸지만 무엇보다 야마시타 토모코의 작품 스타일이 시각보다는 청각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눈으로 쫓을 때는 들어오지 않았던 작은 대사들이 소리로 들으면 꾹꾹 사람 마음을 찌릅니다.

주점 아키라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이거예요.


"뭘 먹어서 그렇게 인기가 있는 거야?"
"쌀이요."

'쌀이요'라고 말하는 그 시크함이야말로 야마시타 토모코답지 않나요?



뭐랄까, 대부분 금요일에는 늘 그렇지만, 나도 조금은 쿨한 사람이 되고 싶은 밤입니다.
최근에 자기에게 초조해진 것 같아요. 천천히 꾹꾹 나아가야 할 텐데. 쌀밥이라도 먹으면서.



덧)야마시타 누나 신간 두 권이 왔는데, 정말이지 책을 펼칠 용기가 안 나네요.
남자도 못 그리는데 여자는 더 못 그리는…(웃음). 무난한 순정 만화로 빠지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일단 읽어 보고 판단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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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1 23:47 2009/09/11 23:47
Posted by 유우

내내 마음이 안 좋다

Under 취향 고찰/말을 이야기함   Posted @2009/06/12 14:07

바로 얼마 전에 <수은충>을 읽고 마구 험담을 늘어놓고 내내 마음이 안 좋다.
(그럼에도 비공개로 돌릴 생각은 없으니 정말 사춘기=.=)
미칠듯이 악평만 하고 싶을 때가 있기는 하다. 기본적으로 나는 부정적인 인간이기도 해서, 사실 끝없이 험담을 늘어놓고 싶은 충동을 늘 가지고 있다. 내 안에는 불만이 가득하다.


하지만 분명히 누군가에겐 인생의 바이블, 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에 와 닿는 한 권이었을 그 책을
나는 깎아내릴 자격이 있는 인간인가?


뭔가 험담을 하고 나면 항상 그런 생각이 든다.
나 하나 악평하면 어때, 라고 생각하다가도
이 악평이 얼마나 무책임한가를 떠올리면 마음이 무겁다.


'험담(悪口)'과 '비평(辛口)'은 다르다(ⓒexit)
내가 하는 건 험담이지 비평이 아니다.
험담은 쓰레기다. 쓰레기의 입에서 나온 쓰레기 같은 말이다. 재활용도 안 된다.


나쁘다고 말한 나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좋다고 말한 사람에게는 보이는 무언가가 필시 있을 것이다.
그것을 볼 수 있게 되지 않으면, 결코 비평할 자격이 없다.

나는 한없이 무거워진다.

요즘 유행처럼 많은 사람들이 '비평'을 빙자한 '험담'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을 놓고 싶지 않다. 비평을 못한다면 험담도 하지 않는 인간이 되고 싶다. 저 놈은 바보같이 헤헤거리기만 한다는 욕을 먹더라도 차라리 그 편이 나을 것 같다. 종종 그렇다.



그간 형태는 수없이 바뀌었지만 홈페이지의 나이 올해로 10살. 질풍노도의 시기가 올 때가 됐다. 덕분에 이녀석을 생각하면 요즘 꽤 우울하다. 애는 자랐는데 맞는 옷을 사주지 못한 기분.
어쨌든 뭔가 바꾸긴 바꿔야 할 텐데. 그 생각만 맴돌고 아무것도 안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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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2 14:07 2009/06/12 14:07
Posted by 유우

시대에 남지 않는 글

Under 취향 고찰/말을 이야기함   Posted @2008/09/04 00:56

최근에 안타까운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인데, 솔직히 그의 글은 논술을 위한 글입니다. 분명히 세상에 그런 글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모든 글이 그런 글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글로는 누군가를 울릴 수는 없으니까 말이지요.
때로는 오로지 감성에 호소하는 글도 필요합니다. 그 두 가지가 적절히 섞인 글도 필요하고 말이죠.
중요한 것은 자신의 글만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때로는 이런 글도 저런 글도 필요하다는 걸 아는 것입니다.

그러고보면 세상엔 참 많이 글이 있지요.
시간이 흐르고도 남는 훌륭한 글도 있고, 그 시대엔 평을 얻었지만 사라지는 글도 있고.
시대가 흐른 후에야 발굴되는 글도 있고.
어느 날 생겼다가 금세 사라지는 글도 있습니다.

나는 시대에서 사라지는 글이 좋습니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시시껄렁한 글을 쓰다가, 펜을 든 채 죽는 것도 운치있어 좋네요.
나는 세상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런 것들이 좋습니다.

시대에 남지 않는 수많은 글이 없고서야, 어떻게 시대에 남는 글이 있을까요.
아무런 가치도 없지만, 분명히 누군가의 생명(시간)을 깎아 만든 찌꺼기인데 말이죠.


나는 고작 25년을 살았지만, 그 절반은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주길 바라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니, 반대로 누군가가 읽는 글을 쓰려고 노력한 적은 없더군요.
그래서 여전히 저는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글을 쓰는 것이 곤욕입니다.
내 문장은 하나하나 모두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것들뿐입니다. 그런 이기의 덩어리를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라는 것은 또 얼마나 더 이기적인 일인가요.

조금은 남을 위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내 생명을 깎아 만든 글을, 누군가 자신의 시간을 소비하며 읽는다는 것도 낭만적입니다.
꼭 신주(心中)라도 하는 기분입니다. 이런 생각은 중학생 때부터 해왔는데, 그때는 악의의 일종이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정말로 어두운 아이였거든요. 파트리크 쥐스킨트를 좋아하고, 카프카의 소설과 랭보의 시를 붙들고 싸우는 나날이었습니다.(실은 아직도 그 두 사람의 작품을 이해할 수 없는데요-.-) 지금은 정말 연인을 대하는 기분입니다. 조금은 어른이 되었으려나. 그래도 결국 나는 이기적인 편이 나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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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4 00:56 2008/09/04 00:56
Posted by 유우

君が悲しいとは言えない。

Under 취향 고찰/말을 이야기함   Posted @2007/12/02 12:51

타치바라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너와 나오키는 안 어울린다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도, 이제 어찌할 도리가 없다. 떨어지고 싶지도, 놓치고 싶지도 않고, 놓아 줄 마음도 없다.
아츠시는 난폭하게 얼굴을 문질렀다. 울며 자신의 감상에 젖어있을 여유는 없다. 강해지고 싶다. 나오키에게 호통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고 싶다. 신경질적이고, 약하고, 일그러진 마음 그 자체를 사랑하고 나아가려면, 스스로 변해야 한다.
눈가에 손이 닿아, 놀랐다. 나오키가 눈을 떴다. 다른 사람의 얼굴이 나를 보고 있다.
"당신 우는 거야?"
당황하며 고개를 옆으로 저었지만, 젖은 손가락은 숨길 수 없었다.
"아파?"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왜 우는 거야."
그런 말을 듣자 눈물을 그칠 수가 없었다. 작게 흐느꼈다.
"뭐가, 슬퍼?"
네가 슬프다곤 말할 수 없다. 아츠시는 당황하는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서러운 눈물을 나오키에게 떠맡겼다.

-코노하라 나리세 <HOME> 중에서.

<HOME>은 초반에 괴롭지만, 결말은 낭떠러지입니다.
하지만 초반의 그 어느 날 사막에 내버려진 것 같은 그런 느낌보단, 벼랑 끝에 내몰려서 살려고 서로 부둥켜안은 아슬아슬한 두 사람이 훨씬 좋습니다. 방황하고 멀리 멀리 돌아온 두 사람이 겨우 몸과 마음으로 서로 확인하고, 안심한 그 밤에. 이런 쓸쓸한 독백을 하는 아츠시의 마음과, 항상 어디로 가 버릴지 알 수 없는 나오키의 저돌적인 애정의 형태가 나는 좋습니다.
그저 두 사람 다 서로 다른 방향을 보며, 누군가를 서툴지만 열심히 좋아했을 뿐인데 그 결과가 이런 낭떠러지라는 게 코노하라 나리세다워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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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2 12:51 2007/12/02 12:51
Posted by 유우

내일 자유주의자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Under 취향 고찰/말을 이야기함   Posted @2007/06/26 05:55

긴 학생 시절을 통해 얻은 신념으로 보자면 자유의 승리는 명백하고 권력주의 국가는 일시적으로 흥했다가도 결국에는 망합니다. 파시즘의 이탈리아와 나치즘의 독일이 패한 것이 그 증거입니다.
특공대 파일럿은 그저 조종간을 잡은 기계일 뿐 인격도 없고 감정도 없고 이성도 없으며, 그저 적의 항공모함을 향해 돌진하는 마치 자석 속의 철 분자와 같습니다. 이는 이성을 가진 자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로 자살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며, 정신의 나라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러한 정신 상태로는 죽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내일은 출격입니다. 내일 자유주의자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우에하라 료지의 유서(일부), 게이오 대학 경제학부생.
1945년 5월 특공부원으로 오키나와에서 전사. 22세.


출처: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의원회『미래를 여는 역사』, 한겨례신문사, 2005



본토의 공습과 오키나와 전투, 그리고 너무나 비극적인 두 차례의 원폭 투하가 있었다. 일본은 자신도 피해자라고 말한다. 그럼 대체 왜 자신들 안의 가해자를, 그들은 고발하지 않는 걸까.
패전을 알면서도 전쟁을 멈추지 않은 군부와 전쟁을 용인한 히로히토 천황. 민중이 폭격을 받고 쓰러져 갈 때, 어린 학도병들이 말도 안되는 전투에 내보내져 몰살당하고 있을 때, 천황가의 보물들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방법을 회의하고 있던 그들 말이다.

태평양 전쟁 시기의 일본 수뇌부를 미워하지만, 그 국민 모두를 미워하진 않는다.
그들 역시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였단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전쟁의 진실을 보려하지 않는 그들을 연민한다.


나 역시 무지하고, 무력해서, 그저 가끔 그런 것들을 떠올리며 우는 것 밖엔 할 수 없다. 억울해선지, 슬퍼서인지, 그게 어떤 감정의 눈물인지 나도 알 수 없다. 알 수 없어서 가끔 눈물이 난다.

----
(2007.06.27 추가)
논문 때문에 피폐해진 정신으로 매우 감정적인 상태였던지라 말이 좀.. 횡설수설?
다 끝내고보니 역시 그래서 무슨 소리가 하고 싶은 거냐 싶긴 합니다만.
요는 이거였을 겁니다.

저 글 너무 가슴이 찡했어요. 22살이래, 엉엉엉T_T
뭐 이런거;;(뇌에 다림질 중)

제 성향은 친일도 반일도 아닙니다. 적당히 좋아할 땐 좋아하고, 싫어할 땐 싫어합니다. 그 적당한 선 유지가 참 힘듭니다. 올초부터 이따금 정신이 반일로 치닫는데, 개인적으로 무조건 반일을 외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제 스스로 시야를 좁힐 필요는 없겠지요.
지일(知日), 지한(知韓) 이런 말 참 좋아하는데. 사실 반일, 반한보다 더 무서운 게 지일, 지한일 수도.
역시 그냥 나는 뇌에 주름이나 펴야겠다. 아직 뇌가 썩어서 없어지지 않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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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6 05:55 2007/06/26 05:55
Posted by 유우

그 밤, 망령을 보았다

Under 취향 고찰/말을 이야기함   Posted @2007/05/10 23:16

그 밤, 망령을 보았다.
(중략)
망령들은 의자에 앉거나,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있거나, 뒹굴고 있었다.
모두, 교토 시절의 의상을 몸에 걸치고 태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곤도 이사미가 의자에 앉았다.
오키다 소지가 뒹굴며 팔베개를 하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 옆에 후시미에서 총에 맞아 죽은 이노우에 겐자부로가 여전히 농민 같은 얼굴로 멍하니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토시조를 보고 있다. 야마자키 스스무가 방구석에서 날밑을 갈아 끼우고 있었다. 그 외 몇 명의 동지가 있었던가.

『燃えよ剣』'포연' 중에서. 시바 료타로

가능하면 원문 그대로의 느낌이 좋아서 원문으로 쓰는 게 원칙이지만, 어쩐지 이건 한국어로 읊조리고 싶어지는 대목입니다. "그 밤, 망령을 보았다" 라고. 몇 번을 읽어도 '포연'은 웁니다. 인간의 무기력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서, 그게 안타까웠고 또 좋았습니다.

무사도. 그 말에 가슴 떨렸고, 좋아하려고 발버둥쳤지만, 나는 결국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정의도 비탄도 의지도, 어떤것도 다시 마음을 흔들기엔 나는 식어버렸습니다. 시바 료타로란 소설가의 소설 한 편으로 쉽게 타올랐던 것처럼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모 유명작가의 작품 하나에 완벽하게 식어버렸습니다. 결국 그 정도의 애정밖엔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좋아할 건 좋아합니다. 막말도 전국시대도 좋아합니다. 단지 이야기로서 좋아할 뿐이라고 해도요. 애초에 이야기 속의 허구성 짙은 무사가 좋았던 거라고 해도요.
신센구미도 여전히 로망입니다. 그래도 지금의 나는 신센구미를 미화시키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또, 신센구미 열풍과 일본의 내셔널리즘이 어쩌고 하면서 적개심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그 관계성은 인정해도, 내가 그것 때문에 좋아하는 게 아니니-그것 때문에 좋아할 리도 없지만- 상관하지 않습니다)



☆ 좋아하는 게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중 뭐가 더 슬플지, 시시콜콜하고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양쪽이 같이 다 오고 있는 것 같아 진짜 슬픕니다.
발표 두 개가 동시에 끝나서 오늘은 해방감에 뒹굴 예정이었건만 웬 울증이 찾아오고 그런답니까.
울증에 젖어서 영양가 없는 잡담 좀 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자꾸 드라마 '신센구미!'에서 야마나미가 죽는 화가 다시 보고 싶어지는데요. 구워 놓은 CD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보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 더 우울한 걸 발견했습니다. 언니와 방을 바꿔 쓰고 있지만, 그래도 원래 방(지금 언니가 쓰는 방)에 책들이 있습니다. 저녁에 책장을 뒤적이다 삐- 책을 꺼냈었는데 그 때 안에 있던 광고지가 떨어졌나 봐요. 지금보니 나뒹구는 종이쪼가리. .......... 살색.(파인더의 표적 1화 컬러그림이었습니다-_- 무슨 그림인지 아시는 분은 0.03초간만 떠올려주세요) 언니는 봤을까. .....어머님은 못 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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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0 23:16 2007/05/10 23:16
Posted by 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