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은충 - ![]()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노블마인 |
"그렇게 좋은 사람이 왜 사람을 죽였어요." -<고엽의 날>
저 대사가 나오는 순간 온몸이 찌릿했습니다. 이런 담담하고 파괴적인 한마디를 위해서 책을 읽는 저로서는 지극히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요. 행복 뒤엔 불행이 기다리고 있다고.
좋았던 것은 딱 저 대사까지였습니다. 뒤부터는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고통스럽고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아름답지 않다'는 말은 '추악하다'와는 다릅니다.
차라리 '추악'했다면. 그로테스크의 끝을 내달리다 질펀하게 망가져 버렸다면, 나는 끝까지 행복했을 겁니다.
적어도 이 책을 읽는데에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불행하다고 여기지는 않았을 겁니다.
존속살해, 근친상간, 인육… 이제는 흔해 빠진 금단의 소재들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그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수은충'이라는 가공의 벌레로 표현한 작품이라니, 눈이 팽글팽글 돌만큼 멋져서 주저하지 않고 카트에 넣었습니다만…
금단의 소재를 다루는 방법까지 진부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클리셰도 클리셰 나름의 매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저도 이 책을 킹 오브 클리셰라고 명명하고 내던지고 싶은 충동을 몇 번 삼켰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권선징악이라도 외치고 싶었던 걸까요.
이를테면 '그러게 왜 근친상간 따위 했어!'라고 말입니다. ...하?
이건 마치 소설의 한 챕터인 <잔설의 날>에 나오는 사나코 같지 않습니까? 그저 혼자 도취했을 뿐입니다. 금단의 소재를 늘어놓는 걸 즐길 뿐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아무런 아름다움도 추악함도 느낄 수 없는, 그저 진열된 상품이었습니다.
각 단편마다 주인공이 저지른 죄를 마지막에 폭로하면서 임팩트를 주는 단편인 것 같은데, 중간에 대충 다 짐작이 가서 임팩트도 없었거니와 아무런 여운도 없군요. 여운을 줄 틈도 안 주고 작가가 주절주절 다 폭로하며 '이래선 안 됐는데' 따위의 회개의 말로 매듭을 지어 버리니, 그들을 동정할 마음도 동조할 마음도 없는 저는 웃음만 났습니다.
금단의 소재를 다루면서 대체 왜 이렇게 모럴을 챙기는 걸까. 그야말로 모럴의 군더더기 같은 느낌으로요.
현대판 '죄와 벌'이라서? 그보다는 오히려 '사랑과 전쟁'이 더 어울릴까 싶습니다만.
이 책의 진짜 반전은 마지막의 역자 후기만큼은 일품이란 사실입니다. 수은 온도계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책 속의 수은충에 대한 표현보다 훨씬 아름다웠습니다.(한숨)




도시전설 세피아에서는 신선했는데, 수은충까지 읽어보니 왠지 엔딩을 알거같아!! 라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국내에 나오는 몇 안되는 단편 작가이기에 챙겨보긴 합니다만.. (^^;;)
저는 어쩐지 '참신'하다고 떠드는 소설에 적대감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얼마나 참신한지 보자, 라고 싸울 태세로 읽고 마는 듯한…… 웬만큼 강렬하지 않으면 불감증인 것도 있고요. 여하튼 약간 좌절했습니다ㅜㅠ
>사실 일본 소설은 단편이 참 많은데, 한국에 나오는 책이 드문 이유는 안 팔려서 입니다; 작은 출판사에서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인데다 '단편'이면 정말 내기 꺼려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