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하는 사람 : 덴도 아라타 (日)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09/06/15 17:51

작성일 ; 2008/12/29 10:45 로 되어 있습니다.
나오자마자 사서 읽고 기획서 겸 감상을 쓰다가 관둔 흔적.
감상을 완성하는 것도 지금은 부질없고, 파일로 대사 정리한 게 있는데 그것도 부질없는 듯.
날카롭게 위선적이고 아름다운 소설이었다는 느낌만이 지금 제 안에 떠오릅니다.

결국은 저희가 내지는 못하게 되었고요. 다른 곳에서 계약했으니 언젠가 한국어판이 나오겠지요.
말해 두지만 '재미있는' 소설은 아닙니다. 엄청나게 공감할 수 있는 소설도 아니고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도 아니에요. 자기 만족을 위한 소설이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걸로 충분히 등장하는 인물 모두의 삶이 아름다웠습니다. (2009-6-15)


*


7년을 걸쳐 쓴 것은 이 세상에서 지금 가장 있어 주었으면 하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덴도 아라타

서명 : 悼む人 (애도하는 사람)
저자 : 天童荒太 (덴도 아라타)
출판사 : 文藝春秋 (문예춘추)

내용 : 잔인하고 야한 기사를 전문으로 쓰는 3류 기자 마키노 고타로, 암 말기 환자로 치료를 포기하고 자택 요양을 택한 사카쓰키 준코, 살아 있는 부처라 불리던 남편을 죽이고 4년을 복역하고 나온 여자 나기 유키요. 세 명의 주인공이 각자 전국 각지를 돌며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남자, 시즈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는 죽음 그 자체에 대해 추모하는 일이 결코 없다. 죽은 사람이 누구를 사랑했는지, 누구에게 사랑받았는지, 무슨 일로 사람들에게 감사받았는지에 대해 묻고 그의 삶을 애도할 뿐이다. 시즈토는 자신을 '병'이라고 말한다.
그는 위선자인가, 혹은 그저 마음이 병든 사람인가, 어째서 그 일을 멈추지 않는가, 그 행동의 목적은 무엇인가.

목차 :
프롤로그
제1장 목격자(目撃者) (마키노 고타로-Ⅰ)
제2장 보호자(保護者) (사카쓰키 준코 - Ⅰ)
제3장 반려자(髄伴者) (나기 유키요 - Ⅰ)
제4장 위선자(偽善者) (마키노 고타로 - Ⅱ)
제5장 대변자(代弁者) (사카쓰키 준코 - Ⅱ)
제6장 방관자(傍観者) (나기 유키요 - Ⅱ)
제7장 탐색자(捜索者) (마키노 고타로 - Ⅲ)
제8장 간병인(介護者) (사카쓰키 준코 - Ⅲ)
제9장 이해자(理解者) (나기 유키요 - Ⅲ)
에필로그

--
덴도 아라타의 소설을 위선적인 트라우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위선적인 치유계 소설. 그렇게 따진다면 이 소설은 위선의 극치입니다. '애도하는 사람'으로 불리는 시즈토의 행동은 자기 만족이고, 기만이에요. 그는 마음에 무거운 병을 지니고 자신을 내몹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모습엔 설득력이 있죠. 덴도 아라타의 위선에는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것이 한순간의 위안이란 걸 알아도 울컥하는 무언가가 확실히 이 소설에는 있었습니다.

사건을 추적하는 게 아니라, 담담히 인물들의 삶에 대해서, 그들이 시즈토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탐구와 구원. 이미 이건 장르 문학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본에선 벌써 서평들이 꽤 올라 왔는데, 역시나 호오가 갈리는 군요. '재미'를 추구하는 목적의 소설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해'를 요하는 소설도 아닙니다. 시즈토란 인물은 어느 순간엔 이해가 가기도 하고, 어느 순간엔 전혀 수용할 수 없는 인간이기도 합니다. 그를 전부 이해할 필요도 없고, 신봉할 필요도 없습니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얼마 전에 <용서>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살해 피해자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에서, 한 아저씨는 유영철에게 어머니와 아내와 아들을 잃은 60대 아저씨가 유영철의 사형을 반대하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남은 가족들도 주변 사람들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고, 유영철에게 피해를 입은 다른 가족들은 그에게 분개했습니다. TV를 보던 우리 가족도 모두 저 사람 이상하다고 화를 냈어요.
분명히 제 눈에도 그가 극심한 슬픔 끝에 종교적으로 너무 치우쳐 버린 것 같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를 비난할 수 없었습니다. 그 안에서 '시즈토'의 모습을 보았거든요. 그와 비슷한 처지에서 그를 위로하는 사람중 한 명이 말했습니다.
죽은 모습만이 떠올라서 너무나 괴로웠다고, 어느 순간 살해당한 가족이 살아 있던 순간이 아닌 죽은 모습만으로 기억되게 되었다고.
어떻게 처참하게 살해당했는지는 기억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는지를 기억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시즈토의 행동도 이런 이야기들로 조금은 설명되지 않을까요.

사실 사람이 죽는 모습은, 그것은 평온하게 살다 가는 것이든 병으로 고통스러워 하며 가는 것이든 사고든 사건이든 자살이든 지독히 인상적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면 떨쳐내기 어려운 것이지요.
사람의 죽음이 아닌, 삶을 기억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죽은 사람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은 유족들에겐 또다른 고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신문 한귀퉁이에 실린, 사람들이 '시시한 삶'이라고 말하는 흔해빠진 죽음이 누군가에겐 대체 할 수 없는 특별한 사람이었다는 것. 텔레비전도 신문도 다루지 않지만 그들은 분명히 누군가를 사랑했고, 사랑받았으며 누군가에게 감사받았던 '이 세상을 살았던 인간'이었습니다. 시즈토는 그런 사실들에, 죽어 간 소중한 이들을 잊어 가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움에 무너지고 쓰러져서 마침내 여행을 떠납니다.

그의 여행에는 아무런 신앙도 진리도, 끝내 무엇이 되리란 확신도 없지만 그는 오늘 이 사람을 애도하고, 내일 저 사람을 애도하지 않는 일은 도저히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이해할 수 없는 여행을 그는 줄곧 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병이라고 말하면서요.



*

이 뒤에 제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대충 짐작은 가지만 앞서 말했듯이 굳이 덧붙이지 않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유키요가 좋았습니다. 유키요의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좋았습니다. 시즈토와 유키요가 다시 만날 일이 없더라도, 분명히 두 사람은 언젠가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릅니다. 유키요와 함께 했던 모든 사람이, 아마도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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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5 17:51 2009/06/15 17:51
Posted by 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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