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미인(Lat Den Ratte Komma In)

Under 감상의 늪/영상과 공연과 소리   Posted @2008/11/16 21:52

"빛이 사라지면, 너에게 갈게"



카피 문구와 예고가 아주 절묘한 영화. 뱀파이어 영화라고 말하지 않고 '슬픈 사랑 이야기'라고 선전한 게 저는 아주 좋았습니다. 호러 영화가 아니라 로맨스 영화. 그렇게 생각하고 봤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물론 이 예고를 보고 그런 걸 기대하진 않겠지만, 혹시 스플레터나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 공포를 원한다면 비추천입니다. 마치 두터운 눈처럼 이야기는 매우 정적입니다.
어떤 영화냐고 묻는다면 저는 "관능적일 정도로 순수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답하겠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있습니다)


반에서 괴롭힘당하는 외톨이 소년 오스칼과 뱀파이어인 이엘리.
12살의 인간 소년과 영원히 12살인 소녀의 이야기.(정확히는 '소녀'가 아니지만)
이 부분에서 계속 걸렸는데, 영화를 보자마자 의문은 풀렸습니다. 그렇군요, 그런 역이었어요.

아마도 제게 뱀파이어는 '시귀'의 이미지가 강해서겠죠. '시귀'랑 많이 겹쳤습니다. 특히 이엘리는 스나코의 약한 모습과 아주 닮았습니다. 소녀는 뱀파이어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의 피를 마셔야 합니다. 햇볕을 쬘 수 없고, 몸도 마음도 영원히 무력한 12살 어린 아이. 누군가─인간의 원조 없이는 현실적으로 살아가기 어렵죠.

영화에선 다 그려지지 못한, 어느 시대엔간 그녀와 함께했던 '누군가'를 떠올립니다.
저는 현재 두 사람의 이야기보다 그런 상상을 해 보는 것이 더 좋더군요. 아마도 시작은 이렇게 순수했겠죠.
순수한 만큼 맹목적이었고요. 소녀의 세상에 어둠밖에 없듯이 소년의 세상에 소녀밖에 없어서
소녀가 영원히 12살이듯 그의 마음도 영원히 12살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그의 몸은 점점 커 가고 이윽고 노쇠해져 가더라도.
그리고 어느 순간 여전히 12살인 소녀 옆에 자신이 어울리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까지 소녀를 버릴 수도, 소녀에게서 헤어날 수도 없습니다. 이미 너무 오래 그 사람의 세계는 소녀로 종결된 채 닫혀 있었으니까요.

이상 제 망상. 외톨이었던 오스칼도 이엘리를 통해 세상을 얻었습니다. 지금은 그걸로 된 거죠?
설령 수십 년 후에 또 다른 오스칼이 나타나더라도. 지금은 그걸로 된 겁니다.


이엘리가 영악하다고도 나쁘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제 망상이지만 그 하나하나의 사랑이 그녀에겐 전부 동등했을 겁니다. 그 하나하나가 모두 이엘리에겐 12살 소녀가 하는 어리고 순수하고, 그만큼 이기적인 사랑이죠.

뱀파이어가 된 순간 어떤 이는 자신의 삶에 수치를 느끼고 죽음을 택하지만
이엘리는 계속 살아가는 길을 택했을 뿐입니다. 그게 나쁜가요? 대체 누가 감히 그걸 나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영화 흐름이 뚝뚝 끊기는 부분들이 있어서 조금 거슬리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제가 예상했던 대로라 좋았습니다. 온통 새하얀 눈도 좋았고요. 눈처럼 새하얀 소년 소녀도 좋았습니다.
조금 추적추적하고 우울하고 싶은 날에 추천합니다. 겨울 밤에 보기는 아주 좋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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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6 21:52 2008/11/16 21:52
Posted by 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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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새벽하늘님의 코멘트, Posted @2008/11/20 09:49 댓글쓰기 수정/삭제
    아직보지않았습니다. 보고싶습니다. 볼 예정입니다.!!!
    하지만, 그럼 앤티크는?(웃음)
    정정해서...앤티크를 보러갈 예정입니다. 하지만 렛미인도 보고싶습니다.
    꼭 보고 감상 남기겠습니다^^
    • 유우의 답변, Posted @2008/11/20 13:52 수정/삭제
      요즘 앤티크 대세로군요. 허헛.
      이 영화는 금방 내리지 않을까 걱정되어 개봉하자마자 얼른 봤어요. 흡혈귀란 소재를 좋아하기도 해서. 좀 낯선 분위기이긴 하지만 괜찮은 느낌의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