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 외전, 이라고 할까 완결판에 실리지 않은 이야기 모음으로 된 작은 책자입니다.
이 책을 받은 것은 작년 여름이군요.
모리야마 나오타로 씨의 CD와 작은 향불(굉장히 귀여운)과 이 책과 언제나와 같은 달필의 장문의 편지와.
겨우 13개월 전인데 몇년 전처럼 느껴지네요. 그 사이가 질풍 같이 많은 일들이 지나간 느낌.
굉장히 프라이버시한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원래의 저로선 구경도 해 보지 못했을 책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13개월 간 이 책을 봉해 둔 채였습니다. 자신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보고 싶은 마음과 섣불리 책을 넘겨선 안 될 것 같은 미묘한 감정이 얽혀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책에 대한 감사도 전하지 않은 채 입니다.
이런 귀한 책을 받아도 되는 걸까. 보내주신 그 분은 두 권을 가지고 계셨던 걸까.(구하신 경로도 쉽지는 않으셨던 것 같은데) 그런 기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 지 모른 채 13개월.(웃음)
새벽엔 기분이 좀 침울해져서. 그런 상태에서 왜인지 지구인이 다시 읽고 싶어져서.
본편과 외전을 읽고. 드디어 이 책을 손에 들었습니다. 이 책을 덮었을 때, 나에게 있던 '보면 안 될 것 같은' 그 불안의 정체를 알 것도 같아졌습니다. 비밀의 화원은 비밀을 담아 둔 채 들어가선 안 되는 곳, 이란 사실을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본편도 꽤나 무서운 이야기였지만. 역시나 무서운 이야기였어요, 지구인.
그런데도 결국 행복해 보였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덮어두고 있는 비밀의 화원. 그 곳에 핀 달콤하고 죄많은 과실. 그렇지만 결국 그 과실에 손을 댄 사람도 대지 않은 사람도, 그로 인해서 행복해지거나 불행해졌다고 말하는 건 자신의 잣대.
이를테면 이야기의 가장 큰 희생양이라고 할 수 있는 가브리엘이 택한 길은, 그녀에겐 행복의 길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한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에게서 선택 받은 여자.
뭐,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귀축남의 진면목을 발휘하며 드디어 미카엘님을 손에 넣은 라파엘님, 이련가;;;;;;;(치하야와 카게츠야는, 뭐 이미 단내 나는 커플이고) 아무래도 이 이야기에서 가장 좋았던 인물은 역시 라파엘님이었던 것 같아요. 위험한 남자를 좋아하는 취미는 없는데, 그에게선 역시 충실한 광견의 냄새가 풀풀 풍겨서. 위험한 남자와 광견은 역시 다르잖아요? 평소엔 훈련 잘 된 얌전한 개 같지만 속은 온통 시커멓게 탄 이 광견은, 사실 주인을 휘두르는 취미 나쁜 남자이고. 이 주인이란 사람은 제멋대로의 여왕님 같지만 사실 남에게 잘 휘둘리는 어리버리한 타입이고.
... .... 너무 귀엽잖아요.
하지만 마냥 귀엽다고 좋아할 수도 없는 충격적인 이야기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카게츠야는 아빠랑 엄마 중에 누굴 닮은 걸까, 라는 멍청한 생각 따윌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라도 하지 않으면 우울함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이야기가 곳곳에.
결말이 좋으니까 다 좋은 걸까요. 하아.
마지막으로, 13개월이나 늦었지만. 이런 책을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좀 더 지구인이란 만화가 좋아졌어요.

